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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갈그미스(Carchem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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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댓글 0건 조회 38,441회 작성일 06-04-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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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미슈의 성벽
알레포의 동북 120km지점 유부라데강 오른쪽에 있는 현재의 지에라불스의 한 빈촌.
(1) 주전 717년 사르곤 2세에 의해 정복되었다(사10:9).
(2) 주전 604년 애굽 왕 바로느고가 느부갓네살과 싸워 패하였다.
☞ 바벨론의 역대기들: 616-539BC까지의 갈대아 왕들의 역대기들은 성경 내용을 실증해 준다. 대영 박물관 번호 21901인 나보플라사르(Nabopolassar)역대기는 616-609BC동안 어떻게 바벨론을 건국했고 어떻게 앗수르 왕국이 붕괴되었으며 수도 니느웨가 멸망했는가를 보인다. 이 역대기는 바벨론이 그의 동맹국들과 함께 612BC에 어떻게 니느웨를 공격했는가를 말하는데, 「아카드왕(The King of Akkad = 나보폴라살의 별명임)은 그의 군대를 소집하였고... 움만만다(메데 혹은 scythians의 왕임)는 티그리스 강둑을 건너고 니느웨를 향해 진격했고 거민을 타파하고.... 포로들을 끌고 갔으며 도시와 성전은 황폐됐다.」고 적고 있다. 그들은 마치 나훔의 예언처럼 불을 질러서 도시를 태웠고, 강물을 끌어들여 홍수를 맞게 하여 성이 황폐되게 했다. (참고: 바벨론과 메데는 연합해서 앗수르를 공격했다). (P. M. Masters, A tour of biblical evidience in British Museum, London, Sword & Trowel, 1983, P.15) 이 역대기의 다른 한 쪽에는 요시야 왕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왕하 23:29와 대하35:20-24와 일치한다. 신흥 바벨론과 메데 연합군에 의한 앗수르 멸망(612BC,) 후, 앗수르의 잔류민들은 앗수르의 서북부 도성인 하란으로 모여서 다시 궐기하여 두 차례에 걸쳐 신흥 바벨론을 대항하여 화란 을 탈환하려 하였다.
이때, 이집트의 바로느고는 앗수르가 하란을 바벨론으로부터 재탈환 하는 것을 도우려고 2차례나 시도했는데(신흥 바벨론을 꺽어서 진출을 억제하려고) ① 바벨론 왕 나보폴라사르가 알고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앗수르로 진군해 와서 애굽의 바로느고 군대를 물리쳤고, (이때가 609BC였으며 이때 요시야가 애굽의 바로느고 군대와 맞서다가 전사했음 = 당시 요시야는 반 앗수르적인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앗수르가 망하는 것은 독립을 위하여 유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계산으로 요시야는 앗수르를 도우려는 바로느고를 대항하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했다. 그런데 왕하23: 29, 30과 대하35: 23, 24를 비교하면 요시야가 죽은 곳이 다르게 설명된다. 후자가 요시야의 죽음을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대하 34: 28의 예언의 성취를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즉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대로 그는 다가오는 유다의 재앙을 보기에 앞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요시야의 최후를 자세히 밝힌 것이다). ② 다른 한번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605BC에 다시 바로느고를 저지했고, 그 갈그미스 전투 후 유대에까지 들어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많은 포로를 잡아가게 되는데 그 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끌려갔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나보폴라사르 역대기와 느부갓네살 역대기는 자세하게 언급한다.
(참고: 우리 성경의 왕하 23: 29의 "치고자 하여"의 원문 은 "against"뜻만이 아니라 "위하여"(for, on behalf)의 뜻도 된다. 대영 박물관에 있는 바벨론 흙판 연대기(Babylonian clay tablets, 고유번호 21946)의 본문에는 "위하여"라고 되어있다. 어느 해석을 취하느냐에 따라 이해가 달라지는데, "위하여"로 수정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다른 석판(고유번호 22047)에서도 애굽이 바벨론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또 고유번호 21946에는 애굽이 갈그미스에서 605BC에 바벨론 군대에 망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설명은 "치고자"를 "돕고자"로 고친 것을 전제한 것이다. (cf. John Bright, The Kingdom of God, New York, Abingdon Press, 1592, P.109; P. M. Masters, A tour of biblical evidience in British Museum, London, Sword & Trowel, 1983, P.14; 김희보, 구약이스라엘사, 총신대출판부, 1985, P.391의 각주17)
☞ 느부갓네살의 (서판)역대기: 느부갓네살 연대기는 갈그미스 전투 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는데, 이것에 관한 번역은 1956년에 D. J Wiseman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연대기의 박물관 번호는 21946번이다. 이 역대기의 내용은 「Akkad 왕 (Nabopolassar) 제 21년에 그의 장남이자 왕위를 승계한 느부갓네살은 군대 소집을 하고 이집트 군대를 대항하기 위해 갈그미스로 진군했고... 바벨론 군대는 그들을 완전히 제압했다... 그리고 하티 (Hatti)나라의 모든 지역을 정복했다」라고 한다. 여기서 "하티"란 팔레스틴을 포함하는 것이며 느부갓네살이 사용한 용어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1차 침공은 느부갓네살이 이집트를 격퇴하기 위해 갈그미스에 왔다가 아예 유대까지 정복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1차 침공을 받았을 때 유대의 왕은 "여호야김"이었다. 역대기의 내용은 계속 말하기를 "597BC에 그가 다시 예루살렘을 공격했으며, 조공을 받고, 보물을 노략했으며, '여호야긴'을 잡아가고 또한 10,000명 정도의 다른 포로들과 짐승들도 끌고 갔으며 '시드기야'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 사실이 있다"고 한다. 이 서판은 여호야긴이 포로된 후 바벨론에서 그의 5아들과 함께 월급을 공급받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592BC 날짜로 기름 영수증 3장도 발급했다고 한다. (P. M. Masters, A tour of biblical evidience in British Museum, London, Sword & Trowel, 1983,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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